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해리 S. 트루먼 (문단 편집) === 평범한 정치인, 부통령을 거쳐 대통령이 되다 === >'''I felt like the moon, the stars, and all the planets had fallen on me.''' >'''달과 별, 그리고 모든 행성들이 내게로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 >전임 대통령 [[프랭클린 D. 루스벨트]]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남긴 말. 종전 후 미국으로 돌아와 [[소꿉친구]]였던 베스 윌리스와 [[결혼]]을 하고 [[양복]]점을 경영했지만 얼마 못 가서 말아먹었다. 이 후 30대에 캔자스시티 법률학교를 졸업하여[* 이후 법대 야간 코스를 시작했지만 중도에 포기했다.] 38세라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1922년]]부터 [[1934년]]까지 지역 판사(겸 서기)로 일했으며, 1934년 미주리주 연방 [[상원의원]]이 되었다. 이후 계속 재선해서 2차대전 당시엔 미국 연방 상원의 국방사문위원회, 일명 트루먼 위원회의 의장으로 주로 [[군납비리]]에 대해 군대와 산업계에 대한 광범위한 조사활동을 펼쳐 당시 물가 기준으로 약 150억 달러의 국고를 보존할 수 있었고 미군에 납품되는 물자, 병기에 대한 엄격한 기준을 확립했고 이러한 업적은 오늘날까지 미군과 군수산업계에 영향을 줬다고 한다. 다만 상원의원 활동 때에도 그렇게 활발한 타입은 아니었고 그렇다고 일을 못하지도 않는 무난한 의원이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1944년]] [[프랭클린 D. 루스벨트]]의 [[미국 부통령|부통령]]이 되었다. 부통령이 된 과정이 좀 무섭다. 전임 부통령이었던 [[헨리 A. 월리스]]가 루스벨트와 사이가 멀어지면서 자연스레 4선 선거(1944)에서는 부통령을 바꾸자는 논의가 일어났는데, 이 때 가장 가능성이 낮은 후보가 트루먼이었기 때문이다. 트루먼이 부통령이 된 것은 민주당 중진들과 루즈벨트 대통령의 동상이몽의 결과였다. 민주당 중진들의 입장에서 보면, 1944년 당시 루스벨트의 건강상태가 심각한 수준임은 미 정가 고위층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던 사실이었다. 따라서 1944년의 대통령 선거에서는 부통령이 누가 되느냐가 굉장히 중요했다. 당시 민주당 중진들은 이런 사정을 고려해서 트루먼을 뽑은 것이다. 후보자들 중에서 가장 만만하고 능력도 없어보이니 루스벨트 사후 자기들이 잘 이용해 먹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루스벨트가 트루먼을 부통령직에 앉히는데 동의한 까닭은 좀 다르다. 그는 자신이 4선을 꽉 채울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후계자를 선택한다는 개념이 없었다. 그가 트루먼을 선택하는 데 동의한 이유는 부통령 후보자들 중에서 뉴딜 정책을 옹호하는 유일한 후보자였기 때문이었다.[* 트루먼은 재임기간 뉴딜을 한층 강화한 "페어 딜(Fair deal)"로 사회보장정책과 완전고용을 완수하였다.] 또한, 상술한대로 그가 4선을 한 시점에서 전쟁이 끝나가기 때문에 종전과 함께 시작해야할 군축을 밀어붙일 수 있는 능력자로 트루먼 위원회때 인상깊은 활동을 할 트루먼을 자신의 종전후 정치일정에 맞춰서 선택했다는 의견도 있다.[* 정작, 그는 루스벨트 사후 대통령이 되어 전쟁을 매듭지었지만 냉전의 시작으로 군축에는 실패했고, 결국 군축은 한국전쟁 종전을 공약으로 제시한 아이젠하워 행정부에 가서야 실행된다.] 하지만 그는 월리스가 스스로 자력으로 치고 나온다면 그를 마다할 이유는 없다고 보았고, 트루먼에 그의 의중이 있다는 것은 월리스를 경계하는 정객들에게 더욱 과대포장된 감이 있었다. 여하간 모든 것은 정객들의 계산에 들었고, 루스벨트도 크게 마음에 안 들진 않았고, 월리스만 닭 쫓던 개 신세가 되었다.[* 흥미로운 건 월리스는 전시 각료감이었는지 [[맨하탄 프로젝트]]에 깊게 관여했고, 또 민주당 내에서 대단히 진보적이었으며 [[소련]]에도 가장 우호적인 정치인이었다. 이 때문에 냉전기에 월리스가 대통령이 되었다면 [[냉전]]의 불안감이 줄어들었을 것이란 옹호론과, 미국이 소련에게 끌려다니는 [[호구(유행어)|호구]]가 되었을 것이라는 비판론이 있다. 이중에서 비판론을 받아들인 대표적인 대중매체로는 2차 대전 시기를 다룬 대체역사소설 [[검은머리 미군 대원수]]가 있다. 여기서의 월리스는 FDR이 일찍 죽어서 트루먼 대신 대통령직을 승계받는데, '각료'만 거치고 제대로 된 정치활동을 못 해봐서 정치감각이 일천하다는 점을 근거로 '이상주의에 빠져 필요이상으로 소련에 퍼주는 순진한 [[호구(유행어)|호구]]'로 묘사되어 미국 정치인들과 주인공을 비롯해 처칠의 뒷목까지 잡게 만든다. 반면 똑같이 월리스가 대통령이 되어도 옹호론을 기반으로 한 대역물인 [[나, 스탈린이 되었다?!]]에서는 [[FDR]] 사후 주인공의 통제 하에 평화지향적으로 바뀐 소련이 내미는 [[소아마비]] 백신 개발 등 인도주의적 협력을 강화하는 등 전후 소련의 든든한 우군 정도로 묘사된다. 그러나 고지식한 이상주의자라는 점은 여전해서 공작정치는 안 된다며 정적들의 공격에 대해 영악하게 맞서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결국 흑화한 [[더글러스 맥아더]]와 '''[[조지프 매카시]]''' 듀오의 [[매카시즘]] 공격에 밀려 재선에는 실패한다. 퇴임 후에도 은퇴한 주인공 스탈린과 함께 [[해비타트|집 짓기 자원봉사 활동]]을 [[지미 카터|다니는 것은 덤.]]] 그리고 과연, 3개월 만인 [[1945년]] [[4월]], [[얄타 회담]] 직후 루스벨트가 뇌일혈로 죽자 지도력을 검증받지 못한 상태로 대통령이 되었다. 참고로 트루먼은 이 소식을 하원의원들과 술 마시다 받았다고 한다.[* 요나스 요나손의 소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에서 이 일화에 관한 에피소드가 있다.] 물론 여기서 술 마셨다는 것은 놀러가서 마신 건 아니고 민주당 의원들과의 공식 미팅에 정부 대표 자격으로 참석한 자리이긴 했다. 그리고 미팅 중에 급한 소식이 있다는 소리를 듣고는 투덜거리면서 백악관에 들어갔더니 영부인인 [[엘리너 루스벨트]]의 첫 마디가 "'''대통령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였다고 한다. 엘리너의 회고에 따르면 소식을 듣고 한참을 침묵하던 트루먼은 "제가 부인을 위해 무엇을 해 드려야 할까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앨리너는 '''"아니요. 제가 당신께 무엇을 해드려야 할까요? 앞으로 골치 아플 일이 많으실 테니까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만큼 루스벨트가 남겨놓은 과제가 많았다는 소리다. 그래서 트루먼은 대통령 취임 직전에 '''"달, 별, 그리고 모든 행성이 내게 떨어지는 기분이다."'''(I felt like the moon, the stars, and all the planets had fallen on me)라고 소감을 밝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